모래의 여자​

매일 모래구덩이를 퍼내는 삶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더욱 권태롭게 해준 책. 


8월.

어느 한 남자가 사막을 찾는다. 사막에 사는 희귀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서다. 사막을 걷다가 한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노인은 남자에게 자신의 마을에서 하루 묵고 갈 것을 권한다.  

그가 데려간 곳은 20미터 쯤 아래 모래구덩이 속 마을에 있는 쓰러져가는 집이었다.  끊임없이 모래가 쌓여 매일매일 모래를 치우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모래에 파묻히게 되는 곳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은 모래를 퍼올리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다음 날 남자는 자신이 이 마을에 갇혔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모든게 노인과 마을사람들의 계략이었던 것.

그리고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단 하나의 통로인 '밧줄'을 쥐고 있는 노인. 

#난 학교 선생이에요... 동료 교사도 있고... 내가 행방불명 되었는데 세상이 조용하게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노인은 혀끝으로 윗입술을 축이고 별 관심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글쎄,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파출소에서 조사를 하러 나오지도 않았고..... 

노인은 절대 그를 내보내지 않을 심산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처절하게 모래구덩이에서 탈출할 궁리를 한다. 결국 모래구덩이 밖으로 나가는 데 까진 성공하지만 죽을 위기를 맞게되고, 그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 손에 이끌려 다시 모래구덩이로 내려오게 된다.

10월. 

탈출에 실패한 남자는 마을사람들의 경계심을 푸는 데 주력한다. 지내다 보니 약간 이 생활에 익숙해진 듯도 하다. 

#정말 생각해 보니, 언제 어떤 식으로 탈출의 기회가 찾아올지 전혀 앞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아무런 기약 없이 그저 기다림에 길들어, 드디어 겨울잠의 계절이 끝났는데도 눈이 부셔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는 우연한 발견으로 모래에서 물을 퍼올리는 장치를 고안하게되고, 동시에 탈출할 기회도 얻게되지만 마을사람들이 돌아오면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에 탈출을 뒤로 미룬다. 


매일매일 모래구덩이를 퍼내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우리네 일상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 

하지만 한 가지 다른 건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모래구덩이 속 사람들에겐 '희망'이란 게 없지만 우리는 더 나은 세계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기대심리가 우리의 권태로운 일상에 작게나마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게 아닐까. 

어느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하지만 권태로움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희망도 활력도 모래속에 서서히 파묻혀 버리고 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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